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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의 1997년 저서 ‘Innovator’s Dilemma’에서 처음 등장한 ‘파괴적 혁신’ 이론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파괴력을 유지하고 있다.




비디오게임 시장에서의 닌텐도 Wii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 등 중국산 중저가 브랜드의 약진도 적용된다. 사실 거의 모든 하이테크 시장은 이 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괴적 혁신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시장의 리더는 새로은 경쟁자가 등장할 때 인지(awareness)를 하고, 이에 대응할 능력(ability)도 갖추고 있으나,

2)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willingness)가 충분하지 않다

3) 그래서 신규 진입자의 위협을 소홀히 대한다

4) 그 결과로 시장의 약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내용이다.

리더가 게으르고 부주의했기 때문에 초래한 재앙이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배적 지위를 수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즉 끊임없는 혁신을 경주했기 때문에 약자에게 밀렸다는 것이  크리스텐슨의 주장이다. 책의 제목이 Innovator’s dilemma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그래프로 구체적 과정을 살펴보자.








1) 리더는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매출 볼륨이 큰 high end market에 집중하게 된다. 기술 발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수록 그에 맞춘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어느 순간 high end 고객조차 필요하지 않은 수준으로 기술을 진보시킨다. 80년 대 비디오 플레이어가 쓸데없는 예약녹화 등 너무 많은 신기술을 탑재했고, 백과사전에 맞먹었던 사용설명서가 딸려왔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2) 리더가 소홀히 했던 low end market의 요구에 맞춰 새로운 시장 진입자는 다소 떨어지는 기술과 가성비를 갖춘 제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 시장은 리더에게 중요한 시장이 아니고,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3)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시장 약자도 당연히 기술 발전을 지속한다. 물론 아직까지 리더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high end 고객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자신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할 뿐더러, 가성비까지 갖췄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리더는 이제 깨닫게 된다. 자신의 텃밭을 야금야금 뺏겼다는 것을.

그러나 되돌리기엔 늦었다. 시장에 파괴적 혁신이 발생했고, 리더는 약자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이 이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선택과 집중은 항상 옳은가?’이다.

이종 산업간의 영역(boundary)이 없어지고 연결(connectivity)이 증가하는 환경에서 말이다.


팬택을 생각해보자.


1991년 ‘삐삐’(무선호출기) 제조사로 시작해 LG전자의 휴대폰 OEM 업체로 성장하는 동안 팬택은 ‘시장의 신규 진입자’로 기술적 역량을 키워왔을 것이다.


2001년 현대 큐리텔을 인수한 외형 확장기에는 본격적으로 시장에 자신을 드러냈다. 삼성 애니콜과 LG 싸이언이라는 리더가 high end 시장에 집중하는 동안 팬택은 low end 시장을 서서히 가져가기 시작했다. 당시 팬택은 휴대폰 시장의 innovator였다.


2005년, 휴대폰 시장에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SKT 전용폰으로 매니아적 인기를 가졌던 SKY를 팬택이 인수한 것이다. 그리고 팬택은 외쳤다. ‘이젠 나도 leader다!’ 위풍당당했던 ‘MUST HAVE’ 광고캠페인이 이러한 자신감을 대변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이후의 이야기는 그렇지가 못했다.

‘파괴적 혁신’은 강자의 불행한 결말로 끝맺는 스토리가 아니던가.


다행히 크리스텐슨은 ‘시장의 리더가 파괴적 혁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다음 장에서는 신데렐라가 되어 무도회에 등장했던 팬택이 가졌어야 할 다음행보에 대해 다뤄보겠다.


* 본 내용은 연세MBA 권구혁 교수님의 ‘경영전략’ 강의에 바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