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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모임이 시작되었다. 20대, 30대 초반부터 알던 이들은 40대 중년이 되었다. 다들 죽겠다고, 힘들다고 말한다. 빈 술병이 늘어갈수록 생존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어떻게 해야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집에 가는 그 날’을 늦출 수 있을까?

쓴웃음 지으며 우리가 동의한 솔루션은,

빨아라.





속된 표현이다. 올바른 표현은 아마도 ‘아부’일 것이다. 윗사람에 잘 보이고, 시키는 대로 토달지 않고 따르고, 물개박수라도 치면서 예쁘게 보이는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술 자리의 모두가 한잔 털어놓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게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미울리 없다. 일 조금 더 잘한다고 해도 늘상 개기고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보다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다. 10년 이상 경력되고 나면 사실, 업무역량이란건 거기서 거기다. 인사평가나 진급 심사를 할 때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내 앞에서 늘 생글거리는 그 녀석이다. 사실 윗사람의 평가란 세심하게, 객관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반적인 인상이 크게 작용한다.


“잘 하는 거라곤 빠는거 밖에 없는 아무개가 이번에 전무 됐다더라”, “오래 버티며 열심히 빨고 볼 일이야”, “너도 내년에 열과 성을 다해서 본부장 빨아라”


덕담이라고 해야하나, 자조섞인 농담이라고 해야하나. 이런 말들로 마무리했다. 술에 취해 집에 오는 길에 내가 빨아야 할 얼굴들이 떠올랐다. 괜히 숨이 가빠졌다.